유럽연수생-황하영
  Name : 황하영  Date : 16-01-19 20:35  View(2579)     
  FILE #1 : 유럽사진.zip (684.9K), Down:2, 2016-01-19 20:3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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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이 작성되지 않아 이렇게 올립니다ㅜㅜ-


반갑습니다! 황하영입니다. 오랜만에 다시 인사를 드리네요. :) 감사하게도 언제나 부산개금교회 성도님들께서 일어나시고 나서, 아침, 점심, 저녁 드시기 전후, 주무시기 전 마다 기도해주셔서 안전하게 잘 다니고 있답니다.


저희는 독일에 이어 이번에는 체코의 프라하와 체스키 크룸로프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빈과 잘츠부르크에 다녀왔습니다.
 체코 프라하에서는 다정이의 추천으로 프리투어라는 것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프리투어는 스투비플래너에이젼시에서 하는 프라하프리투어인데요, 하루 종일 가이드를 따라다니며 프라하를 둘러 본 후에 자신이 느낀만큼의 팁을 가이드에게 주는 형태입니다. 항상 이 나라 저 나라를 둘러보면서 박물관에서는 영어로 된 설명도 읽고, 인터넷 검색도 해보면서 많은것을 배우고 느끼고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가이드의 역사스토리와 함께한 프라하에서는 더욱 풍성한것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평소같으면 "우와.. 크다.. 멋지다... 아름답다.. 나도 한국가서 이런것들을 적용해보고 싶다. " 이정도였는데 이번에는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들과 장소들을 둘러보면서 '이렇게 화려하고 멋진 곳들에도 아픈 사건들이 있구나.'와 같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옛날 체코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았다고 합니다. 때문에 곳곳에 그 흔적들이 남아있다고 하는데요, 그 이유는 이러한 흔적들을 후손들이 보고 '옛날엔 이런 일들이 있었구나.' 하며 언제나 그
역사를 돌이켜 보고 미래를 위해 잘하라고 그대로 남겨 두었다고 합니다. 이런점에서 우리나라와의 과거 역사적 견해에 대한 차이점을 살펴 볼 수 있었습니다.

또 궁전들에 있는 그림들을 보고 설명을 해주셨는데 체코인들은 종교적이나 정치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창문밖으로 던지려고 하는 습성이 있다고 합니다. 때문에 옛날 체코가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을 때, 개신교의 귀족들이 그들를 탄압한 의원들을 찾아가 창문밖으로 던져버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던져진 의원 몇명이 살아남아 오스트리아에 가 있던 왕에게 일러 바쳤고, 분노한 그는 이 귀족들에게 어떻게 할것인지 물었고 이에 귀족들은 차라리 자기들을 죽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결국 이들은 목이 베여 죽었습니다. 그들의 목이 베인 장소는 올드타운스퀘어인데, 여기에는 칼빈, 루터보다 훨씬 앞서 종교개혁을 하려 했던 얀 후스의 동상이 있습니다. 얀 후스의 종교개혁이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이들의 희생이 끼친 영향력을 보면 정말 놀랍고 과연 나는 그럴 수 있을까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세계사와 함께한 가이드 투어는 정말 유익했습니다. 이 때 배운 프라하의 역사가 그 다음 나라인 오스트리아까지 이어져, 그냥 왔더라면 또 '멋지네, 유럽이네.' 정도로 끝났을 오스트리아가 달리 보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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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트리아는 강력한 국가로 다른 나라의 지배를 거의 받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 만난 사람들의 마인드까지 "나는 살면서 져본 적 없다." 라고 말하는 듯한 오스트리아를 닮아 보였습니다. 외국인들 거의 모두가 그렇겠지만 제가 볼 땐 유난히 이 나라 사람들이 뭔가 달라 보였달까요? 먼저 오스트리아에서 갔던 도시는 빈(비엔나)입니다. 빈은 독일과 비슷했습니다. 유럽 전체와 비슷하게 옛날에 지었던 건물들을 아직도 사용하고, 언어도 독일어를 사용해서 그런지 아직도 독일에 있는것만 같은 느낌이 계속 들었었습니다.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 성당들도 돌아봤지만 그래도 빈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당연히 빈 오케스트라 연주였습니다. 한국에서부터 잔뜩 기대 하고 온 오스트리아여서 그랬는지 저에게 빈은 즉 빈필(Wiener Philharmoniker)이었습니다. 이거만 보러 여기에 왔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습니다. 체스키에서 밤을 거의 새다시피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부탁해가며 티켓을 예약 했었는데 그래서 그럴까요, 기대가 너무 컸는지 아니면 그 날 저녁 공연을 보기
전에 힘들게 걸어다녀서 피곤해서 그랬는지... 공연을 보는 약 한시간 반 동안 잠도 오고 거기다 입석이라서 발도 아프기까지 했습니다. 뒤에 서 있는 한국인들을 발 아픈지도 모르게 소름이 끼칠정도로 어무 감동적이었다고 하면서 감상했지만 피곤한 저에게는 옛날 조성시대의 하이든이나 베토벤 교향곡들은 자장가로 다가왔습니다. 분명 너무너무 잘하고 지휘자의 지휘로 만들어진 음악은 섬세하게 잘 만들어져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구의 말같이 "잘해야 본전이다. "라고 CD를 틀어 놓은 듯한 음악은 너무 깔끔했습니다. 하지만 아니나다를까, 하이든 다음에 연주된 곡은 3대의 클라리넷을 위한 협주곡이었는데요, (Iván Eröd, Tripelkonzert für drei Klarinetten und Orchester, Opus 92) 이 곡은 현대에 지어진 곡이었습니다. 음악도 발전하고 항상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추구합니다. 학교에서 배운 최근 음악들이 그래서 그런가 아직 음악을 제대로 배운지는 얼마 안됐지만 역시 이 곡이 저에겐 흥미로웠습니다. 클라리넷 연주자 세명은 아마 부자관계였던거 같은데 연주자 한명한명의 기량도 뛰어나고 호흡도 훌륭했으며 퍼포먼스도 정말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 했습니다. 이 곡이 끝나고 사람들이 박수를 치는 동안 연주자들과 지휘자가 나갔다 들어왔다를 반복하는데 중간에 아까 연주때는 못봤던 할아버지가 같이 나오셔서 인사를 하시는 겁니다. 왠지 작곡가의 나이와 한번 맞춰보니 곡의 작곡가인듯 했습니다. 작곡 전공인 저로서는 뭔가 동질감이랄까... 다른 옛날 대가들의 작품연주보다 가슴 뭉클 했고 관심이 갔습니다. 이번 공연을 보면서 많은 것들을 느꼈습니다. 연주가 시작 되기
전 앞 좌석들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곱게 빼 입으신 할머니 할아버지분들이셨습니다. 한자리도 빠짐 없이 좌석은 만석이었는데 그 대부분이 노년층이라는게 매우 신기했습니다. 클래식 공연이 이 나라의 음악이라고해서 만석인가 하며 신기해하기도 했지만 생각해보니 젊은이들이 생각보다 없는거 보면 이 나라도 세월이 지나면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 처럼 관심이 사라질련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공연 하나를 보고 하는 억측이다 할 수도 있겠지만 음. 그래도 우리나라 말고도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신기했던건 연주가 시작 되고 그 곡이 끝나기 전까지 숨소리도 들리니 않는다는 것입니다. 연주가 끝나고서야 참아왔던 기침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재밌기까지 합니다. 연주에 대한 예절이 역시 남다르구나 하는 생각도 들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겠구나 싶었습니다. 빈필을 마지막으로 다음 날 모짜르트의 도시 잘츠부르크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하.. 한달이 다 돼 가는 시점. 그동안 성도님들의 눈물과 땀을 흘리신 기도 덕분에 너무 안전하게 평화롭게 다녀서 그런지 너무 방심을 했나요, 기차를 타려고 올라타는 순간 제 지갑의 지폐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낯선 사람의 도움은 거절 하라고 그렇게 가이드북에서 당부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는데 거절해도 달라붙을 줄은 몰랐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지폐만 들고 내려버려서 그렇게 큰 좌절은 아니었지만 생각할수록 왜 저만 이런 일을 당하는지, 저에게 문제가 있는 건지 생각하게 되고 착하게 살면 손해만 보는거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래도 지갑 통채로 들고간 것도 아니고 어디 끌려간 것도 아니고 몸이 무사하니 다행으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더욱 필요합니다. 앞으로의 남은 날은 더 조심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잘츠부르크 한인 교회에서 들은 설교 말씀이 생각나는군요. <선을 심으라! (갈 6:7-10)> 소매치기 당한게 선한 일은 아니지만... 제가 선한 일을 몸에 베여 베풀고 다니는 사람은 아니지만 선을 기회 있는대로 행하되 낙심하지말고 포기하지 않으면 심는대로 거둘 것이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앞으로 살것을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그 것이 저를 위한 일이 아닌 하나님께 합당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며 계획하고 실행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 해야겠다는 다짐도 해 봅니다.

 모차르트 생가에서 모차르트 머리카락을 보며 모차르트 한명이(오스트리아 출신 음악가는 더 있지만, 빈은 클림트가 더 유명해보이지만) 한 나라를 살려먹이는 것을 보며 사람 한명의 중요함을 느꼈습니다. 모차르트는 어렸을때부터 음악 신동이었지만 그도 도전과 실패가 있었고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Anna Pavlova의 말에 의하면 "신은 재능을 주시고 노력은 그 재능을 천재로 만든다. "라고 합니다. 비엔나 한인교회 설교말씀에도 그랬듯이 하나님께서 재능을 주셨는데 그것을 또 발전시키지 않으면 그것 또한 잘못이다라고 합니다. 살아갈 수록 주변에 잘하는 사람들이 더 보이면서 제가 확실히 무엇을 잘하는지, 그게 음악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노력해 보려고 합니다. 그것에 대해 알아가는게 즐겁고 그게 하나님의 영광되는 삶이라면 더욱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 유학온 유학생들을 보면 여기서 의지할 분이 하나님밖에 없기때문에 더욱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가 절실하다고 합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졸업 후의 인생이 막막하지만 하나님께서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 붙들고 부르실 때 언제나 달려 나갈 수 있도록 준비된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