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4-18 15:47
위대함과 연약함을 보았습니다!
 글쓴이 : 샬롬
조회 : 3,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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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저런일이 있을수가 있을까.!"
어르신들께서 종종 하시는 말씀중 낯익은 하소연같은 말투이지만 세상일에 저런일이 벌어진 현실을 지금 우린 겪고 있습니다.
자연의 능력앞엔 우리들은 나약한 존재일수밖에 없는 한낱 먼지같은 피조물에 불과함을 보았습니다.
가르침중 이땅에 소망을 둔 자와 하늘에 소망을 둔 자의 차이가 하늘과 땅차이 임도 깨닫았습니다.
이땅 이시간 진노의 잔을 거두어 주시길 간절한 소망으로 기도하며 이미 백단위를 넘어선 귀한 생명들이 자연앞에 사라지는 현실에 그 위대함속 지극히 연약함을 보았습니다.
지금 눈물의 기록들로 이땅 가득히 채워지고 있는 통곡의 장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우린 결코 알수가 없지만 우리의 이성적인 의를 넘어선 그 무엇인가의 깊은 원하심이 계실것으로 새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원하심은 이땅 차원이 아닌 하늘에 소망을 둔 자의 뜻에 부합할수있는 이해(理解)의 순종으로 때에 찾아올줄로 압니다.
우린 조국의 아픈 재난을 오대양도 아닌 동네 앞마당에서 눈뜨고 사라지는 생명을 온나라의 통곡과 눈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오늘로 102년전 1912년 4월15일 타이타닉의 재난이 우리조국 대한민국에 하루가 지난 4월16일 침몰 현상으로 경종의 메세지를 보는듯 합니다.
그중엔 사랑하는 우리 믿음의 자녀들도 있을것이기에 그 비통함을 무엇으로 대신하겠습니까...

이제 고난주간의 특별 새벽기도를 은혜 가운데 드렸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중 이해 희년에 주실 은혜가운데 맞이한 특별 기회라는 것에 또다른 의미로 되새겨 보고 싶습니다.
차고 넘치는 새벽의 만남과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그저 이곳 우리의 정서적인 신앙적 믿음으로 해석을 해야 되는지에
그 실망으로 이어지지 않길 기대하며 그나마 아픈 몸을 추스리며 새벽녁 함께하지 못한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며 기도드렸습니다.
다시한번 평강의 은혜가 가정과 사업장에 만복으로 넘치시기를 부족한 이 기도하며 간절히 소망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성도의 교제에서도 상식적 이해가 가는 행동적 발상들이 정상적인 사고에서 기인한것인지를 정신 의학적인 측면에서도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린 간혹 국가간의 역사적 가치 이해 성립중에서도 가해자와 피해자를 혼돈하여 전혀 다른 시대적 상황을 애써 왜곡하며
모순 논리적 궤변으로 역설하는 민족이 바로 이웃에 있습니다.
피해자의 정신적 상처를 가름하며 어루만져 줄수있는 상식적인 행동 메뉴얼이 왜 머리속에 기록되지 않했을까!
역사관이 참 많이 잘못된 비상식적인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파렴치범한 민족의 침해 근성을 우리는 체험하며 잘 보고 있습니다.
개인으로 돌아와 본다면 교회는 다 함께 가꾸어야 하는 은혜의 공동체라고 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그분의 걸작품이라 하는 창조물인 지체들이겠지요.
적어도 자칭하는 최고의 브랜드라 그 가치가 하늘만큼 땅만큼 비교가 않될 미켈란을 저리로 밀어낼 정도의
세상 최고의 걸작품들이라 합니다.
하온데 그 브랜드가 시장표로 전략해 버리면 어찌하옵나이까!
설마 나 자신들이 짝퉁으로 기만한 상표 도용된 MADE IN CHRIST 아니신지요!

사람의 모든 핏줄을 연결하면 지구 한바퀴를 돌고도 남는다고 합니다.
총 핏줄길이 9만6천 키로에 우리가 사는 지구의 둘레가 약4만 키로이기에 그 길이가 가히 놀라운 짐작이 아닐수가 없겠습니다.
이런것을 두고볼때 참 대단한 브랜드다운 걸작품이라 아니할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영육을 분리하여 영을 두고 본다면 하나님께서 참 다양하게 지어셨다는 의구심을 가질수도 있는 대목입니다.
자유의지를 주셨다지만 자격도 없는 이에게 자유의지를 주신것이었다면 정말 좋은 연장이 누구의 손에 달린것이냐에 따라
그 효율성은 상상을 초월함을 이시대에서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시간 한사람의 잘못된 생각으로 수천 수백명의 생명들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장면들도 우린 목격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혹시 내가 가해자로 사랑하는 하나님 이웃 지체에게 상처를 준 행위가 없는지를 늘 돌아보지 못하는 것은 성도의 신분의 적합성에
지극히 유감스럽고 어긋나는 것으로 보아집니다.
교회는 공동체라 그분의 은혜를 함께 나누고 함께 공유해야 합니다.

내것이 아니기에 내 의대로 하는것이 아니고 저이 것도 아닙니다.
내 책임이 아니라 말하기 전에 내 책임일수가 있으며 저이 책임이 아닙니다.
교회 생활에 대한 신앙관의 첫출발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가 문제인것 같은 대목이라지만 일단 상고해 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믿는 형제들이여 우리 함께 성령을 받아 조금이라도 변화된 삶을 이왕이면 살아가십시다.
왜 교회에 나와 예배하는 목적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에 의구심을 자아내는 성도로 적어도 되지는 마시길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작은 것에 일희일비하는 소인배가 되지 마시고 내가 알게모르게 가해자임을 늘 깨닫는 겸손함을 배워 자녀들에게 가르칠께 있는 좋은 부모의 상을 보여주며 언젠가 저 본향에 올라가며 아버지앞에 변명없이 당당하게 설수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부족하고 형편없는 자신보다 조금도 나은것이 없는, 어찌 그리 성도의 본이 되질 못하시는 것이 누를 끼치는 부끄러운 모습임을 보고는 있으시겠지요...!
하늘을 보고 부끄러움 한점없는 참신앙인의 모습으로 함께 교회를 위해 전진하십니다.
더 늦기전에 말입니다.
볼품없는 나에게 없는, 걸작품 그대에게 맡고싶은 그 향기가 바로 이런 향기이기도 합니다.

부활을 맞이한 우리입니다.
부활이라는 생명이 있기에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이것이 없다면 빈강정의 아무 의미없는 신앙이라 생각합니다.
어느날 한낱 죽은것으로 판단되어 언제 어떻게 버릴까 고심한 나무가지에도 3월 어느때에 싹을 피운 저희집 장독대
화분속 나무입니다.
얼마나 신기한지 모르겠습니다.
세마포는 아니지만 가마니에 넣어 언제 버릴참이었는데 이렇게 싹을 피우니 모두가 너무 신기하여 사진을 올려보았습니다.
이미 오랜시간 사망선고를 몇번이나 한 나무였습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죽었다고 포기한 자신들이라면 "끝까지 견디는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으로 부활하시어 승리하시기를
바라고 싶습니다.
영육간 이런 아름다운 부활의 향기를 가지는 것이 성도로써 유익을 끼치는 부활 나무처럼 보다 나은 모습이어야 하지않겠습니까!

가내 평안하기를 소망드림니다.
샬롬.